투자이야기

주식농부 박영옥 대표 이야기

머니정보왕 202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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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시간에는 주식계의 농부 박영옥 대표님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영옥 대표님의 성장기

 

박영옥 대표님은 어린시절 아주 어려운 경제상황에 있었다고 합니다. 즉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는 이야기 입니다. 대표님은 전북 장수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7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탓에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부분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정도로 집안 사정이 좋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중학교 등록금을 납부해주고 후원자가 돼주셨습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남이 편하게 공부만 할 수 없어 중학교 졸업 후에는 서울로 상경해 공장에 취직했다고 합니다.

 

 

상경하고 처음 입사한 직장에서 하루에 12~15시간씩 근무를 했다고 합니다.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하는 섬유가공 공장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우연히 방송통신고등학교 모집 요강을 접했습니다. 그렇게 공장생활 3년 차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낮에는 생활비를 벌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방송통신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공부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3년 7개월 동안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이후에는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신문을 팔고 오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는 학원에서 지도원(조교)으로 공부하며 입시를 준비했습니다.이런 과정속에서 이러한 경험도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 반대 방향 버스를 탄 다음에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계도 없어진 채 낯선 여관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도 정신력으로 버텨낸 그였습니다.

 

 

힘든 입시생활 끝에 중앙대 경영학과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당시 특수장학생 중 하나였던 승당장학생으로 입학해서 4년간 등록금 전액과 매달 10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그중 3만 원은 집으로 송금하고 나머지 금액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를 정말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할 때도 월급이 12만 원이었는데 그에게 10만원은 훌륭한 지원이었던 셈입니다. 현재의 화페가치로 대략 50만원의 생활비이니 그에게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중요한 원천이었으며 이런 계기로 그는 성공을 한다면 사회에 환원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도 그에게는 약간의 사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터미널에서 신문을 파는 등 사회를 먼저 체험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동기들과는 조금 달랐던 그였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낭만적인 생활을 할 때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빨리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낭만적인 대학생활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는 지금 대학시절을 돌이켜 보니 이러한 점에서 아쉬움이 큰 대학생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인회계사를 준비하였으나 2번 낙방을 한 다음에 대학교수님의 권유로 증권분석사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사회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박영옥 대표님의 주식투자

그는 농심철학을 바탕으로 기업과 동행하며 농부가 농사를 짓듯 기업의 생애주기별로 투자를 하는 스타일 입니다. 이러한 주식 스타일이 있기 까지 증권업계에 입문하며 쌓은 기초가 있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소를 시작하여 국제투자자문의 펀드매니저로 활약하다 증권사의 압구정 지점장까지 승승장구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시련이 왔습니다. 고객들에게 주식투자를 권유를 하다가 IMF를 맞으며 그의 커리에도 금이가기 시작했습니다. IMF를 계기로 고객들의 주식이 반토막 이상이 난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객들에 미안함을 가지고 자신의 집을 팔아서라도 고객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게 됩니다. 자신의 집을 담보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집은 자신의 전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재산을 걸고도 자신을 믿고 맡겨준 고마운 고객들에 대한 보답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어려운점이 있다면 그 어려움을 통해 배움을 이어 나가는 것이 강자입니다. 이러한 강자속에 그가 있었습니다. IMF를 통해 그가 배운 것들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주식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동행을 해야되며 주식에 장기투자해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IMF이후 반토막이 난 주식들은 다시 살아나면서 2~3배까지 상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장기투자하며 기업과 동행을 했다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기다림을 무기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제도권에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그는 증권회사를 나와 삼성증권 자문위원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게 됩니다. 2001년 그는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9.11 미테러를 기반으로 증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때를 계기로 전업투자자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헐 값에 떨어진 주식들을 매집하며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농심철학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의 투자철학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업을 발굴하고 매사에 겸양의 정신으로 파트너를 존중하며 적대적이기보다는 우호적으로 공생공영하는 길을 찾고 영속적 기업의 가치에 근거한 장기투자를 원칙으로 하며 노력한 대가 만큼의 기대수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투자한다.

 

이러한 투자철학을 가지고 그는 다음의 기업 선정 기준을 가지고 투자를 합니다. 해당 기업이 어떠한 사업을 하는지, 기업의 재무제표는 건전한지, 건전한 CEO 회사를 경영하는지, 기업이 사회공헌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박영옥 대표님의 지분 공시 기업

 

국보 디자인 - 국내 본사 및 인치가구, R&D센터를 통해 굴지의 인테리어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아디스홀딩스 - 보안분야, 산업용 디스플레이, 3D프린터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조광피혁 - 피혁 전문 업체, 신발, 핸드백, 자동차시트 피혁 등 제조 및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경제TV - 증권 및 경제 관한 미디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2023년 박영옥 대표님은 위 4개의 주식들을 총주수의 5%이상을 지분공시한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박영옥 대표님의 저서

박영옥 대표님은 아래의 책들을 저술하셨습니다.

 

 

1. 주식 농부처럼 투자하라
2. 애야, 너는 기업의 주인이다.
3. 돈 일하게 하라
4. 주식 투자자의 시선
5. 주식 농부처럼 투자하라
6. 주식회사의 약속
7. 주식투자 절대원칙

 

이 중 가장 최근에 발매한 주식투자 절대원칙은 신간 베스트 셀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무리하며

저는 주식농부 박영옥 대표님을 보면서 많은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아 나아간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옛 시절 먹거리도 부족한 시절에 어려운 집안 형편에 열심히 공부를 했고 이러한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그를 장학생의 길로 이어가게 했습니다. 또한 또래들보다 경제적인 여건이 너무나도 부족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길에 자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왜 나는 하지 못하는가? 무엇이 그와 내가 다른 것인가? 철학과 끈기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투자라는 것은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 뿐만아니라 나에게 하는 투자도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자신의 길을 닦고 나아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일에 투자 해 보십시오. 어쩌면 박영옥 대표님까지 못 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삶과 자신과 주변과 동행하고 공생의 관계로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박영옥 대표님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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